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3국 동맹 전쟁 (문단 편집) === 3국 동맹의 물량 대공세 === 초반에 호되게 당하자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정규군뿐 아니라 흑인 노예와 원주민들을 대규모로 징집[*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이들에게 제대하면 노예 신분 해방과 차별금지, 출세 보장을 약속했으나 이들은 대부분 위험하고 험난한 전투지역에 파견되어 대부분 죽고 일부 살아남은 자들에게만 그 혜택이 누려졌다.]하면서 반격에 나섰다. 이 두 국가가 군병력을 제대로 다시 파병하면서 전쟁이 길어지자 파라과이는 불리해졌다. 전쟁 직전에 유럽에다 주문해놓은 최신형 군함 6척만 들어올 때까지 참았어도 전세는 파라과이에게 너무 유리할 판이었지만 그걸 못참았다. 체급으로 따지면 파라과이가 그때도 삼국동맹보다 열세였다. 파라과이는 당시 인구가 60만 명밖에 안 되었지만 아르헨티나만 해도 인구가 150만이 넘었고 브라질은 그보다 훨씬 많은 1천만 명에 육박했다. 그나마 인구가 20만도 채 안 되는 우루과이는 파라과이보다 인구가 더 적은 나라이긴 했지만 바로 옆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이 도와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전쟁 초반엔 갑툭튀한 파라과이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지만 파라과이는 삼국동맹과의 근본적인 체급 차이에 따른 [[소모전]]에서 물량 차이를 극복하기 매우 어려웠다. 사실 개별 전투로만 보면 파라과이와 3국 동맹간의 대결은 승률은 박빙 수준이었다. 파라과이군의 수준이 높긴 했지만 초반 러시 승률빨도 있었다. 초반을 넘기자 3국 동맹은 혹여 부대가 작살나더라도 막대한 예비대 물량으로 로테이션 돌려 가면서 붙었기 때문에 파라과이는 3국 동맹의 물량공세에 점점 밀리기 시작하면서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었다. 당시 브라질 해군은 파라나강의 리아추엘로를 봉쇄하는 중이었다. 파라나강(Paraná江)은 [[라플라타 강]]의 상류로 이 강을 통해 대서양으로 연결되는 파라과이의 젖줄이었고 리아추엘로는 입구에 해당하는 요충지였다. 1865년 6월 11일 파라과이의 함대가 아침에 브라질 함대를 기습했지만 당시 파라과이 해군이 무리하게 작전을 진행한 탓에 파라과이 증기선 9척 중 4척, 바지선 7척이 침몰하고 해군 750명이 전사했으나 브라질은 전사자 104명에 증기선 1척을 잃었을 뿐이었다. 결국 파라과이에게 숨구멍과도 같았던 라플라타 강 유역이 완전히 점령당하면서 파라과이의 전세가 서서히 밀리기 시작했다. 이 리아추엘로 전투(Battle of the Riachuelo)가 실질적으로 이 전쟁의 승패를 결정지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파라과이인들은 '''"만약에 리아추엘로 전투에서 승리했다면 전쟁을 이기고 강국으로 성장하면서 파라과이의 현 국토가 2-3배는 더 넓어졌을 것이다."''' 라는 대체역사를 꿈꾸고 후세에 길이남을 천추의 한으로 여기면서 아쉬워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